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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브렉시트 정리 (영국 공부)

by 돈 굴리는 남자 2021.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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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돈 굴리는 남자 입니다.

 

'브렉시트'에 대해 경제 용어 정도로만 알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또한, 브렉시트가 2021년 1월 1일 이후부터 실질적으로 시행되었다는 사실이 생소하실 것입니다. 

심지어 '브렉시트' 그거 예전에 하기로 한 거 아니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2016년 6월 영국 내 국민투표 결과 브렉시트 진영이 승리한 이후 지금에서야 브렉시트가 실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알아보면서 브렉시트가 남의 나라 얘기라고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었나 새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알아볼 주제는 '브렉시트'입니다.

 

 

영국은 어떤 나라일까?

브렉시트를 잘 이해하려면 먼저 영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이해하셔야 합니다.

 

영국의 정식 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입니다.

미국(United States of Ameria, USA)이 여러 개의 주(State)로 이루어진 나라인 것처럼 영국은 여러 개의 왕국(Kingdom)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아래 영국의 국기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가 합쳐진 국가입니다. 

[출처 : 나무위키]

 

아래 지도를 통해서도 통해 확인해 보면, 영국 본토는 현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바다 건너 아일랜드 섬의 북아일랜드' 네 지역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출처 : 매경프리미엄]

 

영국은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19세기~20세기에 대영제국의 영토는 언제나 제국의 어딘가에 낮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영제국이 정복한 국가는 아래 지도 상 핑크색과 같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이렇게 많은 국가를 지배할 수 있었던 동력은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 덕분이었으며, 이 증기기관은 직물 산업(면직 공장) 및 제철 산업(제철소)에 도입되어 대량생산이 시작되었습니다.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원료와 제품을 수송하기 위한 교통수단도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영국인 조지 스티븐슨이 증기 기관차를 개발한 이후 각지에 철도가 부설되었고, 이후 미국인 로버트 풀턴은 영국에 머무는 동안 방적기와 증기 기관을 보고 증기선을 개발하였습니다.

증기선은 본국과 식민지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으며, 철도는 식민지에서의 물자를 항구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여 보다 효율적인(?) 식민지에서의 약탈이 시작되었습니다. 

 

당대의 강대국이면서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의 돈이 기축통화로 사용되었고, 당시 강대국이었던 영국의 파운드 역시 2차 세계대전 전까지 기축통화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지 않을 것 같았던 영국의 기세가 꺾인 것은 2차 세계 대전 때문입니다.

 

영국은 나치 독일에 반대한다는 적대 선언을 하였고, 직할 식민지들과 영국령 인도 제국 등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와 자치령도 독일을 적국으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영국이 식민지와 힘을 합쳐 독일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면, 영국은 지금도 그 힘을 과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쟁의 주인공은 미국이었으며, 미국이 8월 6일과 8월 9일 일본 히로시마시와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을 투하 이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사실상 전쟁은 끝이 났습니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일본 제국의 식민지로 남아 있던 지역들이 독립하거나 모국으로 복귀하였고, 그 외에도 여러 제국들의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국의 식민지도 인도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독립했습니다. 

 

지금 세력이 기울긴 했지만, 영국은 제국주의 시대를 대표했었고, '금본위제'를 도입하여 화폐(파운드화)에 신용을 부여하여 기축통화 체제를 구축한 국가입니다.

당연히 영국인은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사람들입니다. 

 

브렉시트(Brexit)의 의미와 종류

브렉시트란?

영국을 나타내는 말인 'Britain'과 나간다는 의미의 'Exit' 합쳐진 단어입니다.

즉,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의미합니다.

 

독일, 프랑스와 함께 유럽연합 최강국 중 하나인 영국이 탈퇴함으로써 유럽연합에 미칠 영향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또한 다른 국가들의 탈퇴를 염두한 유럽연합은 영국과의 협상과정에서 강경한 태도를 보였으며, 좋은 것만 다 가지려던 영국은 결국 협상을 지연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브렉시트의 3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드 브렉시트(Hard Brexit)

하드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 시, EU 단일시장 및 관세동맹에서 완전히 탈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영국이 유럽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상품이나 서비스에 있어 단독 시장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하드 브렉시트는 EU에서 완전 탈퇴하고 국경 통제권을 강화해 이민자 수를 제한할 수 있으며 분담금도 부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드 브렉시트가 이뤄질 경우 영국은 유럽 시장으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에 새로운 무역 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소프트 브렉시트(Soft Brexit)

소프트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EU)은 탈퇴하지만 단일시장 내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EU 분담금 등을 부담하는 것입니다.

즉, 영국이 일정 부분 EU 역내에서 관세의 자유를 누리면서 EU와 공동시장을 현수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은 아니지만, 유럽자유무엽연합(EFTA)와 유럽경제지역(EEA)의 회원국으로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노르웨이는 EU 회원국이 내는 예산 분담금의 80~90%를 부담할뿐더러, EU 법률의 75%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원래 영국의 테레사 메이 영국 전 총리는 원래 하드 브렉시트를 고수하였으나, 영국의 경제적 타격을 우려해 소프트 브렉시트 방침으로 전환한 바 있습니다.  

 

노딜 브렉시트(No Deal Brexit)

노딜 브렉시트는 영국이 유럽연합(EU)과 아무런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EU를 탈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딜 브렉시트가 성립되면 영국은 EU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되며, 통상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게 됩니다.

 

영국 중앙은행은 노딜 브렉시트 시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8%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이투데이]

 

브렉시트 배경

영국은 왜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됐던 것일까요?

 

배경은 집권당인 보수당의 유럽회의주의자 세력을 회유하고, 동시에 야당인 노동당에 못 미쳤던 당시 보수당의 지지율을 회복하는 한편, EU 가입 조건의 재협상(영국민의의 EU잔류지지를 높이기 위해 EU에 위임한 권한의 일부 반환 요구 등 가입조건의 재검토) 등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보수당이 한 번 더 선거에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전략이 유효하여 보수당은 단독 과반수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고, 'EU 가입 계속'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아시는 바처럼 누구에게도 이익이 없으며,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브렉시트 진영이 승리한 것입니다. 

 

영국이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한 이유

영국민의 과반수가 EU 탈퇴를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영국민은 유럽 대륙과의 통합에 회의적인 국민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EU 재정위기 이후 유로존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하였고, 2015년 가을 시리아 및 중동 난민의 대규모 유럽 유입에 따른 EU의 통합과 규제 강화 등으로 인해 영국 내에 EU 탈퇴 여론이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원래 영국은 영어권 국가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심지어 5개의 눈(Five Eyes)라는 이름으로 소속국 정보기관들은 기밀문서의 열람이 가능하며, 미국 국방부 및 국무부 기밀 네트워크에도 접속이 가능합니다. 

 

[출처 : 나무위키]

 

위에 비해 역사적으로 경쟁적 관계였던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관계는 이해관계로 묶여 있으며, 득 보다 실이 많은 상황하에서는 당연히 국민 여론의 악화는 불 보듯 뻔한 결과입니다. 

 

2) EU 통합과정에서 발생한 민주적 절차의 결여입니다.

영국은 EU 통합과정에서 다른 EU 회원국과는 달리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아 그동안 국민들의 불만이 축적되어 왔습니다.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당 내 브렉시트 찬성 세력(유럽회의주의자) 결집과 영국독립당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브렉시트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3) EU 안에서 낮은 영국의 위상입니다.

영국은 유로화를 단일통화로 사용하는 1999년 유럽경제통화동맹(EMU, European Economc and Monetary Union)과 재정위기 해결을 위한 2011년 신재정협약 참여를 거부하는 등 EU 통합 강화 정책에 지속적으로 반대함에 따라 EU 안에서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어 왔습니다. 

 

EU 법이 영국법의 상위법인 관계로 영국은 유럽의회에서 새롭게 결정된 법안이 영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의석수 제한 등으로 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영국이 갖는 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럽연합 내에서의 위상은 낮았습니다. 

한마디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버린 상황이었습니다. 

 

4) EU 분담금 부담과 과도한 규제입니다.

영국은 EU 예산에 대한 순분담금 국가입니다. 

다시 말해 평균 유럽연합에 내는 분담금 대비 유럽연합으로부터의 수혜금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항상 기부하는 상황이며, 이 규모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에 이어 4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국-EU 간 브렉시트 협상 쟁점

현재는 결론이 난 상태이므로 협상 쟁점이었던 사항까진 몰라도 되지만, 추후 유럽연합 중 다른 국가가 탈퇴 선언을 할 수 있으니 이번 기회에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이 찾아보았습니다.

 

다른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으나, 이는 무역 협정을 맺고 단기 무비자 입출국 협약을 맺으면 해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외적으로는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이며, 내적으로는 영국 내 위치한 글로벌 기업의 본사 이전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백스톱(Backstop)이란?

백스톱은 영국이 EU 탈퇴 후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사이에서 하드보더 (국경을 엄격히 차단하고 통관과 통행 절차를 강화하는 조치)를 피할 수 있도록 영국과 EU가 영국을 당분간 EU 관세동맹에서 잔류시키기로 타협한 조항을 의미합니다.

 

[출처 : 아주경제]

 

하지만 영국 내 보수당에서는 백스톱 조항이 있으면 유럽연합 탈퇴 비용을 지불하면서, EU를 탈퇴하는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결국 불완전한 탈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북아일랜드 국경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지만, 대규모 국경을 세우고 군대를 배치해 관리하는 것도 일이며, 아일랜드 국가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분단국가가 되는 일이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아일랜드는 왜 분단되었는가?

왜 아일랜드 국가는 분단되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일랜드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적 갈등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541년 아일랜드를 침공한 영국의 헨리 8세는 아일랜드 국왕을 겸하며, 아일랜드 북부에 영국 신교도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이주한 영국인들은 아일랜드 북부 토지를 장악하고 기득권층으로 성장해 아일랜드 토착민인 가톨릭(구교)교도들과 갈등을 벌였습니다.

 

1921년 영국-아일랜드 조약으로 대영제국 내 자치령인 '아일랜드 자유국'이 만들어질 때 영국계 신교도가 많은 북아일랜드 6개 주는 영국에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들은 1949년 남부 26개 주가 아일랜드로 완전히 독립한 뒤에도 영국에 일부로 남았습니다.

 

한마디로 다수결의 횡포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60년대 후반에 신교와 구교 간의 치열한 대립이 이어지자 영국 정부는 1969년 9월 군을 투입해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를 신교와 구교 지역으로 분리하는 장벽을 세웠습니다.

이런 살벌한 대치 상황 속에서 1972년 영국 공수부대가 시민들에서 발포해 14명이 사망하는 '피의 일요일'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명분 삼아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무장투쟁을 하게 됩니다. 

 

처절한 갈등은 "북아일랜드의 귀속 문제는 북아일랜드인들의 자유의사에 맡긴다"는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을 통해 겨우 봉합되었습니다. 

 

그런데 브렉시트 때문에 다시 아일랜드의 국경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입니다. 

 

[출처 : 한겨례]

 

브렉시트 관련 주요 일지

지난했던 4년간의 브렉시트 주요 일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결론적으로 브렉시트 시나리오를 전혀 준비되지 않았던 영국 정부와 내부 갈등으로 인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브렉시트 협상은 계속적으로 연기되었습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인해 총리가 2번 바뀌었으며, 조기 총선을 통해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영국 하원의 구성이 바뀌여 가까스로 합의되었습니다. 

 

브렉시트 합의점

유럽연합과 영국은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브렉시트에 대해 합의점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서로의 이해관계 때문에 결국 합의를 못하고 노딜 브렉시트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작년 말까지도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극적으로 영국과 유럽연합의 미래관계 협상이 타결되었고, 4년 만에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완전히 독립되게 되었습니다.

 

경제력의 15%가 축소된 EU로서는 우울한 뉴스일 테지만, 시장에서는 극심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던 노딜 브렉시트 상황을 피한 데 안도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에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에 약속했던 것을 이번 합의로 완수하게 됐다"면서 "영국은 다시 재정과 국경, 법, 통상, 수역의 통제권을 회복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관세

연 1,000조 원에 달하는 영국-유럽연합 간 상품 교역에 통관 절차는 추가됐지만, 기본적으로 종전 같은 '무관세, 무쿼터'로 극적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일단 관세 측면에서 영국은 큰 손해를 면한 것입니다.

하지만 상품 교역은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며, 나머지 80%는 '금융, 법률, 학문, 문화, 첨단 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인프라와 생산성을 자랑하는 런던 금융가가 얼마나 타격을 입을지는 향후 관전 포인트입니다.

 

아일랜드 국경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국경 장벽 복원 문제는 지난 2년 동안 브렉시트 협상에 큰 쟁점사항이었습니다.

아일랜드는 어떤 형태의 장벽 설치도 반대했고, 결국 일정 기간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 영역으로 유지하는 것을 '백스톱'이란 이름으로 테레사 메이 전 총리가 합의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완전한 브렉시트가 아니라는 비판을 통해 메이 전 총리는 사임하게 되었고, 이를 집중 공격했던 보리스 존슨 총리가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북아일랜드를 EU 관세동맹에 잔류하게 함으로써 아일랜드의 요구를 수용하였습니다.

 

영국 영해 및 어업권

쟁점이었던 부분 중 수산물 어획량 쿼터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유럽연합 국가 소속 어선의 어획 쿼터를 3년 동안 80% 줄여 영국 어민의 이익 보호를 주장했지만, 5년 6개월 동안 25% 단계적 감소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 부분은 유럽연합의 요구가 관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영국의 영해는 위에 보시는 바와 같이 너무나도 넓습니다. 

 

위의 그림에 보시는 바와 같이 영국 바다는 EU 국가 소속의 어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이었고, 어민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강하게 요구하였으며, 영국이 이에 한발 양보한 모습입니다. 

 


 

영국은 브렉시트 협상을 완료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유럽연합을 탈퇴하기 위한 비용, 유럽연합 내에 있을 때 들어가지 않았을 비용(국경, 세관 등), 그리고 글로벌 기업의 본사와 지사의 이전 및 그로 인한 세수 감소, 실업률 증가 등 수많은 사회적 비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변종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복지 비용의 지출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국이 어떻게 통화 정책 및 복지 정책을 펼칠지는 지켜볼 일입니다. 

 

반면 유럽연합도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며, 영국이 내던 분담금의 재원을 확보해야 됩니다.

유럽 재정위기를 이끌었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에게 분담금을 걷을 수 없는 일이며, 못사는 동유럽 국가들에게 분담긍르 걷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결국 기존에 내던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등에서 추가 분담금을 더 걷어야 할테지만, 타국을 위해 세금을 추가로 더 내는 국민들은 점점 유럽회의주의자로 변모할 것입니다.

 

당연히 유럽연합의 추가 분담금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지켜볼 일입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2019년 8월 22일 영국과 FTA를 체결하여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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